2020. 12. 20. 19:49ㆍHeavenly gallery/B관: History of Bible_역사관
유월절 폐지 역사는 사단의 권세 아래 이뤄진, 교회사 속 엄청난 비극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시며 열어주신 유일한 생명의 길이 ‘유월절’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없이는 구원도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시며 자녀들이 유월절 지키길 바라는 간절한 뜻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유월절의 원리와 축복에 대한 구절은 아래 배너에서 더 자세히 확인해보실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교회들에서는 이 생명의 진리인 유월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 폐지’라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재 아래 소집된 니케아 회의는 교회사 및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세계적 종교회의였다. 이 포스트에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영원한 생명의 길인 유월절 폐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초대교회의 진리를 회복하는 올바른 신앙의 자세인지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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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폐지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초대교회의 진리
2천 년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세우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켰던 초대교회의 진리는 완전한 진리였다. 그 완전한 진리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진리가 바로 유월절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력 1월 14일 저녁인 목요일,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심으로 유월절을 새 언약으로 제정하시고, 그다음 날인 성력 1월 15일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에 따라, 무교절 다음에 오는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초대교회 역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유언(누가복음 22장 15절 참조)에 따라 성력 1월 14일 저녁에는 유월절 성만찬을 행했고, 성력 1월 15일에는 금식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무교절을 지켰다. 그리고 무교절 후 첫 일요일에는 떡을 떼며 부활절을 기념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지켜온 이 세 절기는 각각의 의미와 날짜가 명백히 다르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이고,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부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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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폐지의 시발점: 로마교회가 변질되다
이렇게 완전했던 진리가 변하기 시작한 계기는 ‘로마교회의 변질’이었다. 유월절 폐지의 시초가 된 로마교회의 변질은,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이 하나둘씩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진행됐다.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 위치한 로마교회는 원래 노예와 같은 하층민 신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점차 중류층이 입교하고 나중에는 귀족들까지 입교하기 시작하면서 인근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그 세력이 넓어졌다.
그런데 이 로마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떠나 곁길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유월절에 성찬식 하는 것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행해야 할 성만찬(고린도전서 11장 26절 참조)을 유월절 다음의 일요일인 부활절에 행했다. 즉, 로마교회는 명백히 서로 다른 절기인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인 것처럼 합쳐 일요일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잘못된 풍습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회의 변질이 불러온 이 풍습이 유월절 폐지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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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유월절 폐지 논쟁: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간 충돌이 일어나다
이러한 풍습은 기독교 내 문제를 발생시키기 충분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새로운 전통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행해왔던 동방교회와의 충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충돌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55년경 로마교회의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던 ‘폴리캅’ 사이의 논쟁이었다.
폴리캅은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인물로서, 유월절인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하는 것이 예수님께로부터 내려온 전승이고, 자신 역시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을 이렇게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회사(초대편) 121-122쪽에서 알 수 있듯, 이 유월절 폐지 논쟁에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캅과 로마 교황이었던 아니케터스는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제1차 유월절 폐지 논쟁은 서로 다르게 그 날을 지키기로 합의 보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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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유월절 폐지 논쟁: 부활절의 성찬식이 ‘도미닉의 규칙(주의 규칙)’?
이 논쟁은 1차로 그치지 않고 2차에 계속되었다. 제2차 유월절 폐지 논쟁은 197년경 촉발되었는데, 여기서 중심이 되었던 것이 바로 당시 로마교회 감독인 빅터의 주장이었다. 빅터는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지닌 교황으로서, 성력 1월 14일 저녁인 유월절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의 첫 일요일인 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도미닉의 규칙(주의 규칙)’이라 주장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이탈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로마의 관습이 예수님의 규칙이라 우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빅터는 이 주장을 여러 다른 교회에도 강요하며 소란을 일으켰다.
여기서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서방교회들은 로마교회의 유월절 폐지 결정에 따르기로 한 반면, 동방교회(아시아 교회)들은 사도시대로부터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기념해 왔으므로 이를 거절한 것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유세비우스 팜필루스 저, 엄성옥 역, 은성, 1990, 294-295쪽
… 그러나 아시아의 감독들은 교부들로부터 자신에게 전해내려온 관습을 지키기를 고집했는데, 그들을 이끈 사람은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였다. … “우리는 진정 올바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인 빌립과 … 요한도 에베소에 묻혀 있습니다. … 이 사람들은 모두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신앙의 규칙을 따르면서 복음에 따라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 ” 이 서신을 받은 로마교회의 감독 빅톨은 즉시 아시아의 모든 교회와 그 인근의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보편단일체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당시 에베소 감독이었던 폴리크라테스는 로마 교황인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의 내용인즉슨, ‘아시아 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과 사도 요한, 그리고 이외의 여러 순교자들은 성력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 역시 그 전승대로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으므로 반드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한 논조로 설명한 폴리크라테스의 입장을 들은 빅터는 아시아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고 했지만,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류함으로써 이 조치를 취소해야만 했고, 제2차 유월절 폐지 논쟁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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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유월절 폐지: 사단이 하나님의 법을 바꾸다
비록 로마교회의 교황인 아니케터스와 빅터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사단은 유월절 폐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완벽히 사라지지 않고 기어코 다시 점화된 유월절 폐지 논쟁의 불씨는 4세기에 이르러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소집으로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이 폐지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간추린 교회사 64-67쪽 니케아 회의의 소집 동기 속 ‘부활절 일자 문제’는 성찬식(유월절)을 언제 거행할지에 대한 내용이다. 즉, 325년에 진행된 니케아 공의회에서 수백 년간 유월절 폐지를 원했던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자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고결한 보혈로 세우시고 그토록 모두가 지키길 바라셨던 절기인 유월절이 폐지되는 최악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심지어 이들의 주장에는 엄청난 모순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부활절의 날짜에 관한 것이었다. 원래 성경 상 부활절의 날짜는 ‘무교절 후 첫 일요일’이다. 그런데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성경적 기준을 없애고 보니 당연히 부활절의 일자조차 제대로 알 수 없게 되었고 ‘춘분 후 만월’이라는, 성경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한 기준을 만들어 부활절로 정했다. 결국 이들은 ‘유월절 폐지’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유월절도 무교절도, 부활절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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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폐지 역사 후: 새 언약 유월절을 회복하신 하나님
이후 끝까지 로마교회의 결정과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사막이나 산중, 동굴 등에 숨어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던 성도와 교회들은(교회사 초대편 283쪽 참조)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서 유월절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니엘 7장 25절의 예언처럼, 사단이 하나님의 때와 법 곧 절기를 변개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약 1,6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유월절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월절 없이는 영생과 구원, 천국에 결코 나아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이 땅에 두 번째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면 다시 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진리인 유월절을 가져오신다고 하셨다. 오늘날까지 아무도 되찾지 못한 새 언약 유월절을 다시 찾아주신 재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이시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교회는 안상홍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밖에는 없다.
유월절이 폐지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를 알았다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참 하나님께서 다시 복구해주신 참 진리 유월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교회사가 증명하는 하나님의 참 뜻을 올바로 깨닫고 생명의 길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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